첫 이레는 "사람이 이름을 불러 한 번 답하는 왕복"으로 섰다. 이 문서는 그 다음 — 부르는 손이 지치는 여덟째 날부터, 화면 안에서 다시 올 이유를 세우는 설계다. 알림 없음·가짜 활기 없음·성소 불가침이 전제다. 그리고 그 앞에, 애초에 문을 안 연 303명의 판정을 먼저 가른다.
겹 1 · 303명 — 오프라인 몫
겹 1 · 화면의 몫 — 이미 서 있다
판정 한 줄 — 닫힌 문 안쪽에서 아무리 불을 밝혀도 문 밖의 303명은 모른다. 303명은 리텐션 문제가 아니라 배달 문제이고, 배달은 사람 손의 일이다. 이 문서의 본론은 나머지 — 문을 연 8명 중 이번 주에 안 온 4명이다. 이 4명이 여덟째 날의 실측이고, 여기서 진 설계는 1,400개 교회에서 수십만 번 반복된다.
여덟째 날부터 먼저 말을 거는 쪽은 교회가 아니라 성도가 남긴 흔적이다 — 흔적이 답을 부르고, 답이 와 있을지 모른다는 우편함의 긴장이 사람을 다시 오게 한다.
첫 이레의 왕복은 교회가 먼저 불러서 성립했다(환영 카드·구역장 인사). 그 방향은 8일째부터 산술적으로 무너진다 — 목사가 매주 수십 명을 부를 수 없다. 그러나 왕복 자체를 포기할 필요는 없다. 방향을 뒤집으면 된다: 성도가 문턱 0의 흔적을 남기고, 교회는 흔적에만 답한다. 흔적은 스스로 과녁을 좁혀 주므로 부르는 손이 지치지 않고, 답을 기다리는 사람에게 홈은 빈 화면이 아니라 우편함이 된다 — 홈의 정의("홈=우편함", 문장 규칙표)가 그대로 여덟째 날의 엔진이다.
새 방인가, 잇기인가 — 잇기다. 새 방은 0개다. 매일 달라지는 실데이터(오늘의 말씀), 흔적에 답하는 규율(첫 이레 24시간), 흔적이 서는 큐(관리 책상 · 배포됨)가 전부 이미 있는데 서로 안 이어져 있을 뿐이다. 없는 것은 단 하나 — 말씀에 흔적을 남길 그릇. 그 이음새 하나(아래 ③)만 새로 짓는다.
말씀이 온다 — 우리 목사 설교에서 매일 한 구절, 교회+날짜로 결정. 라이브 · my_today_word
나는 한 번 탭으로 새긴다 — "마음에 새기기". 쓸 말이 없어도 남길 수 있는, 등불과 같은 문턱 0의 몸짓. 목사님에게만 흐른다. 신규 · 표 하나
새김이 큐에 선다 — 관리 책상 "오늘 말 걸 사람"에 이름과 구절이 오른다. 목사는 명부 순서가 아니라 흔적에 답한다. 큐 배포됨 · 줄 하나 추가
답이 온다 — 말씀카드 또는 사랑방 한 줄. 운반체는 전부 기존 것. 24시간 규율은 첫 이레의 계약 그대로. 라이브 · word_card_send
답이 내 홈 도착줄에 선다 — 확인하러 온 그날, 또 새 말씀이 있다. 고리가 닫히고 다시 열린다. 라이브 · 도착줄
목사의 산수 — 첫 이레 F절의 연장이다. 매주 전원을 부르는 대신, 어제 새긴 사람에게만 답한다. 새김이 0명인 날은 답할 일도 0이다 — 규율이 실사용을 넘어서지 않으므로 무너지지 않는다. 무너진 규칙은 없는 규칙보다 나쁘다는 원칙도 그대로 지켜진다.
반만 맞음"매일 달라지는 둘(말씀·물음)이 둘 다 일방적으로 도착만 한다"
오늘의 물음은 일방이 아니다 — 광장 카드에 "이름 없이 답하기" 버튼이 실재한다(PlazaLanding.tsx · 000201). 다만 광장은 익명 세계라 재방문 습관의 축이 될 수 없다: 홈 복귀는 메아리로만 온다는 광장 정의가 옳고, 익명의 흔적은 목사가 답할 수도 없다. 정말 일방인 것은 오늘의 말씀 하나 — 그래서 이음새는 정확히 거기에 단다.
맞음"매일 다시 오게 하는 것은 성소가 아니라 다른 데 있어야 한다"
성소는 이 설계에서 한 글자도 안 바뀐다. 새기기는 홈의 말씀 카드에서 일어나는 일이고, 성소의 세 물음(세는가·보내는가·돋보이게 하는가)에 걸릴 것이 성소 안에 하나도 없다. 등불은 계속 아무것도 세지 않고 아무것도 보내지 않는다.
맞음 — 단, 이식 금지"골목엔 도장 3번=단골의 누적이 있는데 성도 세계엔 없다"
누적이 없는 것은 맞다. 그러나 골목의 답을 그대로 이식하면 안 된다 — 도장은 상대가 세어 주는 배지이고, 신앙의 반복에 배지를 달면 무릎이 성적이 된다(성소 규칙의 이웃 논리). 성도의 누적은 배지가 아니라 소유여야 한다: 내가 새긴 말씀들이 날짜와 함께 쌓이는 나만의 말씀함. 아무도 세어 주지 않고, 나에게만 보이고, 석 달이 지나면 우리 목사 설교에서 내 손으로 골라낸 구절들이 한 권이 된다. 반복이 관계가 되는 골목의 구조는 3~4단계(큐→답)가 잇고, 반복이 소유가 되는 구조는 말씀함이 잇는다.
사랑방에 대한 보고 — 첫 이레 D2~3의 구역장 왕복이 이어지는 방은 사랑방이고, 그 왕복이 사람 속도로 계속되는 것 자체가 둘째 재방문 축이다. 다만 사랑방은 지금 다른 손이 설계 중이므로(sarangbang-room.html) 이 문서는 문만 가리키고 화면은 짓지 않는다. 이 설계의 고리는 사랑방 없이도 성립하고, 사랑방이 서면 4단계의 운반체가 하나 늘 뿐이다.
은혜님, 좋은 아침이에요
오늘 도착한 건 없어요 · 조용한 날도 좋은 날이에요
오늘의 말씀
"내가 너와 함께 있어 네가 어디로 가든지 너를 지키리라"
창세기 28:15
광주양림교회 · 흔들리지 않는 약속
✦ 마음에 새기기새긴 건 목사님에게만 보여요 · 아무 데도 발송되지 않아요
성소
직분을 문 앞에 벗어두는 방
/my(D8) — 첫 이레 카드는 없다. 빈 마침표는 그대로 정직하다. 달라진 것은 하나 — 말씀 카드가 손을 얻었다. 받기만 하던 자리가 남길 수 있는 자리가 된다. 성소 칸·도착줄·문안은 전부 그대로다.
은혜님, 좋은 아침이에요
오늘의 말씀 · 새겼어요
"내가 너와 함께 있어 네가 어디로 가든지 너를 지키리라"
창세기 28:15
✦ 마음에 새겼어요 — 목사님 책상에 조용히 놓였어요.
한마디 얹고 싶으시면 · 붙여 쓰기 (안 쓰셔도 돼요)
새긴 말씀 3구절 · 나에게만 보이는 모음
›새기기는 등불의 문법이다 — 쓸 말이 없어도 남길 수 있고, 실패할 수 없다. 글은 선택("붙여 쓰기")이고 기본은 탭 하나. "새긴 말씀 N구절" 문은 1구절부터만 나타난다 — 0의 문은 그리지 않는다.
은혜님, 좋은 아침이에요
오늘 도착
이영훈 목사님이 어제 새긴 말씀에 답을 보냈어요
창세기 28:15에 붙인 카드 1장 · 성소에서 고요히 여세요
오늘의 말씀
"두려워하지 말라 내가 너와 함께 함이라"
이사야 41:10
✦ 마음에 새기기도착줄·카드·성소 열람은 전부 기존 배관이다. 새 문장은 "어제 새긴 말씀에"라는 연결 한 마디뿐 — 답이 무작위 호의가 아니라 내 흔적의 귀환임을 문장이 말한다. 이것이 우편함의 긴장을 만든다.
관리 책상 · 오늘 말 걸 사람
새김 · 어제 07:12
김은혜 — 창세기 28:15를 마음에 새겼어요
이 구절로 말씀카드를 보내면 답이 됩니다
이 구절로 카드 보내기초인종 · 어제 21:40
박소망 — 기도 부탁 1건
답 시한 오늘 21:40 · 초인종은 새김보다 위
오늘 흔적 2건 — 흔적 없는 날은 이 큐도 비어 있어요
큐는 이미 배포된 화면이다 — 줄 하나(새김)가 늘 뿐. 무게 순서는 초인종(글) > 새김(탭). "이 구절로 카드 보내기"가 답의 비용을 탭 두 번으로 줄인다 — 화면이 문안을 준비하고 사람은 보내기만 하는 첫 이레 원칙 그대로.
새긴 말씀 · 나에게만 보여요
석 달의 밑줄
우리 목사님 설교에서 은혜님 손으로 골라낸 구절들이에요.
"내가 너와 함께 있어 네가 어디로 가든지 너를 지키리라"
창세기 28:15 · 8월 14일 새김 · 목사님 답 카드 1장
"두려워하지 말라 내가 너와 함께 함이라"
이사야 41:10 · 8월 15일 새김
"여호와는 나의 목자시니 내게 부족함이 없으리로다"
시편 23:1 · 8월 20일 새김
연속일·달성률은 없어요 — 며칠을 걸러도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아요
30일째·90일째의 검산 — 말씀은 설교 서재 전체를 도는 결정 회전이라 마르지 않고(유튜브 임포트), 새김은 내 소유로 쌓이고, 답은 흔적이 있는 날에만 필요하다. 목사가 한 주를 통째로 쉬어도 고리는 소유의 층에서 버티고, 답이 재개되면 왕복의 층이 다시 돈다. 어느 층도 숫자 과시·연속일·랭킹을 모른다.
가짜 활기 0 검증 — 다섯 화면 어디에도 없는 것: "N명이 함께 새겼어요", 인기 구절, 연속일, 씨앗 데이터, 알림 유도. 새김의 수는 어디에도 집계 전시되지 않는다 — 목사의 큐에는 수가 아니라 이름과 구절이 선다. ⚠구현 시 JSX 한 문장은 반드시 한 줄(공백 소실 사고 전례) · 이름 뒤 조사는 lib/korean.ts particle() 전제.
| 화면의 문장 | 판정 | 근거 |
|---|---|---|
| "오늘의 말씀 — 우리 목사님 설교에서 매일 한 구절" | O | 설교 시드 실데이터 · 교회+날짜 결정 회전000196 my_today_word · hashtext(church‖day) |
| "성소 — 오늘 불을 밝혔어요" | O | 등불 실물 · KST 일 단위 · 익명 집계만000200 sanctuary_lamps · my_lamp_today |
| "이름 없이 답하기"(오늘의 물음) | O | 광장 상설 카드 + 답 버튼 실재 — "일방"이라는 전제의 반증000201 plaza_questions · PlazaLanding.tsx |
| "목사님이 말씀카드를 보냈어요" | O | 실측 1장 존재 · 도착줄 배선 라이브word_card_send · my_word_cards · app/my/page.tsx |
| "오늘 말 걸 사람" 큐 | O | 첫 이레의 신규 빌드 — 배포 완료app/admin/o/[slug]/page.tsx · roadmap voice절 ✅ |
| "성도님 번호로 자리가 마련되어 있습니다"(⑤ 종이) | O | 명부 임포트 311행이 곧 그 자리 · OTP 자동 연결 라이브church_memberships · /join/[token] |
| "보통 하루 안에 옵니다" | O(조건) | 문안이 아니라 운영 약속 — 큐가 비워지는 동안만 참. 못 지키면 문장을 지운다(첫 이레 D절 규칙 승계) |
| "✦ 마음에 새기기 · 목사님에게만 보여요" | X | 새김 그릇이 코드에 없다 — 이 설계의 유일한 신규 표. 등불(000200)을 본떠 짓는다: 하루·구절 단위, 발송 0신규 word_engravings(가칭) + RLS 본인·목양자 |
| "새긴 말씀 3구절" | X | 위와 같은 표에서 풀린다 · 0구절이면 문 자체를 안 그린다 |
| "어제 새긴 말씀에 답을 보냈어요" | X(반) | 운반체(말씀카드·도착줄)는 전부 O — 없는 것은 새김↔카드의 연결 한 칸. 신규 표에 답 카드 id 한 열이면 끝 |
| "도장 3번이면 단골"(비교 근거로만 인용) | O | 골목 라이브 — 단, ②절 판정대로 성도 세계엔 이식 금지 |
신규 빌드 총량 — 표 1(새김) · 홈 말씀 카드의 버튼 1 · 큐의 줄 1 · 새긴 말씀 목록 화면 1(서랍이지 방이 아니다). 그 외 전부 기존 배관. X 문장 셋은 같은 표 하나가 태어나는 날 동시에 O가 된다.
〔광주양림교회〕가 성도님께
성도님 자리가
이미 마련되어 있습니다
교회 소식과 기도 부탁을 한곳에서 보는 '우벨'에, 목사님이 명부의 성도님 번호로 자리를 만들어 두셨어요. 가입도 서류도 없습니다.
교회 단톡방에 올라온 파란 글(우벨)을 누르세요.
본인 휴대폰 번호를 넣으면 문자로 여섯 자리 번호가 한 통 옵니다. 그것만 넣으시면 됩니다.
화면에 〔광주양림교회〕와 성도님 이름이 보이면 앉으신 것입니다.
이름이 보이면 성공입니다 — 그날부터 매일 아침, 우리 목사님 설교에서 온 말씀 한 구절이 성도님을 기다립니다.
막히시면 이 종이를 옆자리 젊은 분께 보여주세요 — 1분이면 됩니다. 또는 〔담당 ○○○ · 010-0000-0000〕로 전화 주세요.
문자 속 번호가 안 오면 휴대폰 번호가 교회 명부와 다른 것입니다 — 사무실에 알려 주세요.
왜 종이인가 — 앱을 안 연 303명에게 닿는 채널은 예배(채플) 한 곳뿐이다. 종이는 알림 잠금·오너 자물쇠와 무관한 유일한 브로드캐스트이고, 주보 삽지는 교회가 이미 매주 하는 일이라 새 습관을 요구하지 않는다.
종이는 링크를 못 나른다 — 그래서 종이의 일은 손을 단톡방의 파란 글로 데려가는 것까지다. 종이와 단톡방 블록(개통 각본 C-4)은 한 벌이다: 종이가 예고하고, 링크가 나른다. 긴 주소나 손으로 칠 URL은 싣지 않는다.
성공의 정의를 준다 — "이름이 보이면 성공"(C-1 화법 승계). 그리고 성공 다음에 기다리는 것을 한 문장으로 미리 준다 — 매일의 말씀. ②절의 고리가 이 종이의 마지막 문장에서 시작된다.
실패의 배수구는 사람 — "옆자리 젊은 분께 보여주세요"가 이 종이의 진짜 기능이다(C-3의 "제게 전화 주십시오"와 같은 수). 어르신의 설치는 예배 자리에서 옆 사람 손으로 끝나는 것이 실측이다.
화면의 몫 한 가지 — 개통 카드에 "반 장 인쇄" 버튼: 교회 이름·담당 연락처 슬롯이 채워진 이 꼴을 A4 한 장에 두 벌 얹어 준다. 종이의 조판을 목사에게 시키지 않는다.
호남신학대 301명 각주 — 이번 임포트의 대부분은 교회가 아니라 학교다. 같은 종이에서 낱말만 orgVocab으로 갈아끼운다(성도→학우 · 주보→학사 공지 · 예배→채플 · 목사님→담당 교역자). 문장 구조는 무스킨이다.
여덟째 날의 한 가지
첫 이레는 교회가 이름을 불렀다.
여덟째 날부터는 내가 남긴 흔적이 내 이름을 대신 부른다 — 그리고 그 답이 와 있을지 모르는 우편함으로, 사람은 돌아온다.
새 방은 없다. 말씀은 이미 매일 오고, 큐는 이미 서 있고, 답의 규율은 이미 계약돼 있다 — 새로 짓는 것은 흔적의 그릇 하나뿐이다. 그리고 이 전부보다 앞서는 것이 ⑤의 반 장이다: 303명에게는 여덟째 날이 아직 없다. 첫째 날을 배달하는 것은 화면이 아니라 예배당의 종이 한 장과 옆자리의 손이다.